그렇게 복직 후 첫인사를 치르고, 반년 뒤 2019년 6월 인사부 인사이동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인사부에서 전화를 받는 건 조마조마하다. 언제 또 본사 이동, 강제 이주하라고 전화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아주 친절하게, 여자 차장님이 애는 잘 크냐고 물었다.
"대리님, 애는 잘 커요? 지금 몇 개월이죠? 이번에 인사이동 대상자인 것 같은데, 혹시 본사 내려올 수 있어요?"
"저 이번에 발령 나나요? 이제 겨우 돌 지나기도 했고, 아이가 좀 예민하기도 해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근데 계속 서울에 있을 수는 없어요. 한 번 생각해보고 알려 줄래요?"
본사 발령 나면 내려올 수 있는지 생각보고 알려달라고 했다. 기존에 지방과 서울 발령 시 직원들에게 귀띔도 해 주지 않던 회사였다. 전화를 끊고, 아, 회사가 이제 직원들 생각도 듣고, 미리 준비할 시간도 주는 것 같다고. 당연 그랬어야 한다고 옆자리 선배와 얘기했다.
서울에 있는 다른 이동 대상자 직원에게 메신저로 물었다. 혹시 인사부에서 이동할 수 있는지 연락받았냐고.
아무도 없었다. 왜 나한테만 전화를 했을까 의아했지만, 그들 중 나만 애 엄마였기 때문에 나름 인사부에서 배려한 건가 싶었다. 애 아빠는 왜 배려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하고, 왜 나한테만 전화했나, 정말 이번에는 날 발령 내려고 하는 건가 옆자리 대리님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초조했다.
지방에 있는 본사 발령.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답이 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항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한 계속 서울에 있을 수는 없는데, 아이 초등학교 갈 때까지만 서울에 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가면 좀 낫지 않을까. 그게 너무 길면 말이 통하는 4-5살 정도 되면 아이도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지 않을까. 사실 정답이란 게 있는 질문일까.
남편은 신혼 초 주말부부를 끝내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떨어져 사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다시 내려가게 되면 자기가 정리하고 내려가겠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편은 IT 회사라 대구보다는 서울에 회사가 많을 터였다. 그리고 남편도 지금 회사를 나름 만족하며 다니고 있고, 하는 일도 좋아라 하는 것 같다. 내 직장이 안정적이라고 남편의 직장을 옮기라고 할 수 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내가 다니는 직장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공공기관,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직장 이름에, 월급도 나쁘지 않게 나오는 곳. 물론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대구로 발령받으면 어떡하냐는 말에 아빠가 먼저 엄마한테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발령 나면, 내가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고 엄마가 낮에 봐주라고. 그 말에 엄마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나에게 얘기했다. 엄마의 돌봄 노동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아빠와, 엄마조차도 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자 하는 이 부분에서 나는 할 말이 많다. 어찌 됐든 결론은 엄마가 무슨 죄인가.
다음 날, 나는 인사부 차장님께 전화를 걸어 얘기했다. 현재 본사 발령이 나면 주말 부부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아직 어려서, 어린이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예민해서 지금은 어려울 것 같다고. 발령이 나면 휴직을 다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배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령내면 휴직할 거야' 하는 나로서는 협박성 발언이었지만, 회사에 먹힐 협박은 아닐 것 같았다. 차라리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했어야 하나.
그날, 서울에 근무하는 이동 대상 중 유일하게 전화를 받은 나는 인사부 차장님의 전화가 정말 순수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렇게 알고 끝났으면 좋았을 걸.
* 이 글은 컨셉진스쿨에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로 쓰는 글입니다.
혼자 속 썩으며 화병이 난 것만 같던
그 시절을 털어내기 위해
회상해서 쓰는 글입니다. (지금 아님 주의)
* 앞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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