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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듬뿍: 일상, 마음 쓰기 : )

굿바이 회사] 003. 집 떠나와 열차타고 가는 마음

by 소소듬뿍 2021. 3. 3.

 

* 이 글은 컨셉진스쿨에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로 쓰는 글입니다.

혼자 속 썩으며 홧병이 난 것만 같던

그 시절을 털어내기 위해

회상해서 쓰는 글입니다. (지금 아님 주의)

 

 

* 앞 이야기

001. 마음 속 화 털어내기

002. 지방 이전 vs '강제 이주'

 

 

지방 이전 이후 매주 KTX를 타고

서울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 했다.

 

이전 후 첫 주말,

서울역으로 배웅해 준 남편에게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니

새삼 눈물이 찔끔 났다.

창피하게, 청승을 떨었다.

 

정말 멀리 어디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훈련소 가는 길'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집 떠나와 열차타고 회사로 가는 길'은

서글프다고 한탄했다.

 

 

@pixabay / himanshu gunarathna

 

 

지방 이전으로 

주말부부를 하던 시절.

예전에 같은 부서였던 팀장님이

인사부에 계셨다.

 

신혼여행 갔다온지 3일 만에

주말부부가 된 사정을 아는 

팀장님은 내가 서울로 지원할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서울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좀 알려달라고.

내려와야 하는 사람은 많은데,

올라갈 사람이 없다고.

 

지방 이전한지 1년 정도밖에 안 돼서

대부분 전세 2년 만기로 집을 구한 터라

선뜻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승격, 업무, 직원 간의 교류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듯했다.

 

물론 직장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고,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없다지만,

회사의 주요 업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맡는다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의 소소한 재미를 주는

동료와의 교류도 중요하다.

더불어 내 연봉, 승진을 좌지우지하는 

평가자인 상사, 임원도 다 본사에 있으니

서울 지원 시 이 복잡 미묘한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나도 이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력했을 뿐이다.

'강제 이주'라고 생각할 만큼

연고 없는 곳에 내려가 사는 게

어딘가 쓸쓸했다.

 

대학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 

자취하며 산 친구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회사 사람들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 새로운 동네에서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할,

마음을 나눌 사람을 

새로이 사귄다는 게

귀찮은 30대가 됐다.

 

30대가 돼보니

20대 때 저장한 연락처의 

주인과는 대부분 연락하지 않았다.

연락하는 사람은 

언제 봐도 좋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마음을 터 놓는 친구들뿐이었다.

 

 

자취, 독립이 좋은 점도 있었다.

혼자인 시간을 편히 즐기기도 했고,

책 읽기, 영화 보기, 운동 하기 등

홀로 무언가 푹 빠져들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냥 한 번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게 좋은 거지

평생을 주말부부로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주말부부를 하는 동안

자궁에 문제가 생겼다.

자궁내막증. 

피 비침이 계속돼서 수술을 했고,

수술 결과 난소 한쪽을 잘라냈다고 했다.

난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말에

아이를 빨리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빨리 올라오고 싶은 이유가 추가됐다.

 

나는 회사에서 만든 지침에 알맞은 사람이었다.

지침에 따라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 대상이었고,

나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마침내 서울 발령을 받았다.

 

그나마 경력을 살릴 수 있는

부서에 지원했지만,

이동 대상인 직원이 없어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사람이 필요했던

신규 사업팀에 발령받았다.

 

경력을 이어갈 수는 없었지만,

남편과 함께 살 수 있고

엄마 아빠를 볼 수 있고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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