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6개월 이상 하면
지방 본사로 발령을 낸다는 소리에
딱 5개월 하고 3주 정도
육아휴직을 썼다.
육아휴직을 눈치 보며 쓰는 사기업이 아직 많지만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는
크게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그것도 아이 1명당 3년, 3회에 걸쳐서 쓸 수 있는
나름 육아휴직 복지는 좋은 회사다.
그래서 선배들은 출산하면 1년 휴직을 하고,
남은 2년은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남겨두는 것 같았다.
출산휴가 3개월에 휴직 5개월 3주.
아이가 8개월쯤 복직을 했다.
사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보다
밖에서 일을 하는 게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기한이 있고 성과가 있는
끝이 보이는 일이었다면,
육아는 기한도 없고
육아 이론서도 적용되지 않고,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자아가 생기는 아이와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렇게 회사에 복직을 하니
육아로 집에만 갇혀 있던
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기도 했다.
사내 포털도 업무를 하던 시스템도
동료들도 다 그대로였다.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회사원이라는 정체성도
빠르게 되찾았다.
복직한 뒤 얼마 안돼서
출산, 육아휴직 기간도
근무기간으로 계산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력을 인정하는 데 좋은 제도였지만,
문제는 수도권 근무기간 2년에도
이 기간이 포함된다는 거였다.
서울 발령받고 출산 휴가 전까지 1년 근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8개월.
즉, 복직 후 4개월 뒤면 나는 또
지방 본사로 발령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가 된다.
무언가 억울했다.
그 2년 중 8개월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느라고 쓴 건데
그걸 수도권 근무기간으로 포함한다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인사 시즌에 전화를 받았다.
'본사 이동 가능하냐고.'
돌 아이를 두고
본사를 내려갈 수 있을까.
복직한 뒤 일종의 분리불안이 생겨
퇴근 후에는 화장실도 못 가게 하는데
주말에만 보게 되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는 초보 엄마라 비교 대상이 없었지만,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예민한 기질의 아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심한 편인 것 같다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예민하다는 아이에게
엄마가 부재한 일상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돌도 안 됐다고,
복직한 지 3개월도 안 됐다고 사정을 얘기했다.
또한 서울에서 근무한 기간이
나보다 긴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휴직 중에도
서울로 올라오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았다.
복직 후 첫 인사 시즌,
나보다 근무한 기간이 길었던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본사로 내려갔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특히 아이가 어린 경우
육아휴직을 택했다.
이번에는 아직 대상이 아니었지만,
앞으로 근무기간이 2년이 넘어가니
매 인사때마다 어차피 이동 대상이 될 터이니
생각을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주거가 불안정한,
언제 지방으로 끌려갈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 이 글은 컨셉진스쿨에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로 쓰는 글입니다.
혼자 속 썩으며 홧병이 난 것만 같던
그 시절을 털어내기 위해
회상해서 쓰는 글입니다. (지금 아님 주의)
* 앞 이야기
'재미가 듬뿍: 일상, 마음 쓰기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른 여섯 생일 그리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 (0) | 2021.03.15 |
---|---|
[공유] 2020년 제4차 전국 그림책 책방 지도(그림책협회) (0) | 2021.03.14 |
굿바이 회사] 003. 집 떠나와 열차타고 가는 마음 (0) | 2021.03.03 |
굿바이 회사] 002. 지방 이전 vs '강제 이주' (0) | 2021.03.02 |
굿바이 회사] 001. 마음 속 화 털어내기 (0) | 2021.03.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