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컨셉진스쿨에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로 쓰는 글입니다.
혼자 속 썩으며 홧병이 난 것만 같던
그 시절을 털어내기 위해
회상해서 쓰는 글입니다. (지금 아님 주의)
* 앞 이야기
그렇게 서울에 왔다.
사실 좀 헷갈렸다.
난임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당장 아이를 갖고 싶었다.
자궁내막증, 난소 반절제.
흔한 부인과 질병이라지만
내 몸에서 난소 반쪽이 떨어져 나갔고,
난소 기능을 반 밖에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내 입지를 생각하면,
아이 계획을 미루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공채로 직원을 뽑는 기업이라,
성과가 기준이지만, 기수도 고려해서 승진을 시켰다.
선배 기수들이 차례로 승진을 하고 있었고,
곧 있으면 우리 기수 차례라고 생각했다.
'출산을 하면 승진은 어떻게 되는 거지?
출산 휴가, 휴직 기간엔 안 시킬 거고,
복직하면 또 성과가 없으니까 안 시킬 거고,
그럼 얼마나 밀리는 거지?'
뭐가 우선인지 헷갈렸다.
주변에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니
노력한다고, 간절히 원한다고
한 생명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뭐가 우선인지 잘 모르는 상태로,
결정한 건 단 하나.
피임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아주 감사하게
서울 올라온 지 반 년만에 아이가 생겼다.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 속의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이 이성적으로 말했다.
'서울 올라온지 얼마나 됐다고,
서울에 버틸 수 있을 만큼 2년은 버티고
내려갈 때쯤 아이를 갖지.'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한 뒤
서울 근무는 2년이 최대라는 지침이 있었다.
승진에 대한 미련이 자꾸 생겼다.
반면 엄마가 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웠다.
혹시 이런 생각이 나와 연결된 탯줄을 타고 전해질까 봐.
뱃속의 아가에게 미안했지만
가끔 꿈틀거리는 이런 생각을
아예 없앨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다.
임신 기간 중 이뤄진 승진 인사에서
앞 기수 대부분이 승진했다.
출산 후 4개월 뒤,
예상대로 동기들은 승진했다.
카톡 단체방에서 동기들을 축하했다.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한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등 센서 있는 아이 때문에
잠 못 자는 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날은, 동기들의 승진 소식
나는 못 했다는 사실에 속이 상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년만 참고 이따가 갖지.' 하고
승진하고 싶은 회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임을 걱정하던 때와 달리,
또다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몰려왔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뒤
마음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아이를 낳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실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감정, 행복이었다.
눈도 못 뜨던 아가가
눈웃음을 짓고, 눈물도 흘리고
간지럽다란 감각도 모르던 아가가
이제 간질이면 웃었다.
입사 후 나는 열심히 일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하는 일도 좋았다.
때로는 보람도 있고,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는
도덕 교과서에서 보던 말이
이런 거구나 느낄 때도 있었다.
'일하는 나'를 좋아했던 스스로에게
회사에서 뒤처지는 기분은
꽤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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