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랏빛에 표지에
반짝거리는 제목과 떨어뜨린 아이스크림 콘,
정확히 말하면 아이스크림 콘이 뒤집어져 있는데
쏟아진 아이스크림이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나뉘어 있다.
이 마음도 저 마음도 다 나라는 의미였을까?
-
회사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지방 발령이 난 2020년 1월 난 육아휴직을 택했다.
그 후 이직 면접에서 지금 휴직 중이라는 말에 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럼, 애는 누가 키우나요?"
21세기, 그것도 2020년에 경력직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들을 질문이다.
실무 관련 질문에 분위기가 좋았다가 내가 육아휴직 중이라는 걸 안 이후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저 질문 이후로 야근은 할 수 있는지, 출장은 갈 수 있는지 물었다. 면접관의 입꼬리가 반쯤 올라간 건 내 느낌뿐일지도 몰랐다.
면접을 보고 화가 나는 건, 그 질문에 대거리 한 번 못하고,
출근하면서 어린이집에 가고, 친정 엄마가 하원을 해준다고 답했다.
겨우 덧붙여서 애는 나 혼자 키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곳은 면접관 눈빛이 달라졌고,
한 곳은 요즘에는 왜 다 친정 엄마가 봐야 하나며, 나름 자기가 깨어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나에게 물었다.
"하하, 그러게요." 라고 씁쓸하게 답하며 면접을 마쳤다.
돌아오는 내내 불쾌하고 화가 났다.
면접관에게도 화가 났지만, 그 질문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한 나에게 더 화가 났다.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앞에 면접 본 남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경력직 남자가 그런 질문을 받을까? 애는 누가 보냐며, 야근은 할 수 있냐고, 출장은 갈 수 있냐고.
10년 동안 회사에 다녔고, 육아 휴직 뒤에도 필요하면 야근을 하고, 출장도 가고 1박 2일 워크숍도 갔다.
10년 경력으로 이직 면접을 보는데 나는 왜 그런 질문을 받아야 할까?
우리 부부는 내가 다니던 회사의 지방 이전으로 남편이 옮기는 게 아니라 내가 서울에 남는 걸 택했다.
그 과정에서 지방 이전을 두고 회사에서 받은 불이익과 상처, 이런 경험이 더해지며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밤에는 그 당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이유로 불면에 시달렸고,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나를 탓하고, 환경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평온한 남편과 비교하여 나만 고생한다는, 내가 희생했다는 생각으로 커졌고, 그 생각이 문득문득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자라났다.
-
다행히 지금은 저런 마음이 없다. (정말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문득문득 떠오를 때는 이불 킥만 하는 정도지, 그 생각을 파고들어 나를 상처 내지, 남편을 상처 내지 않는다. 그건 하고 싶은 일이, 몰두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과거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도 부족하니까.
이렇게 스스로 어느 정도 치유가 된 지금 이 책을 만났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반유화)가 상담했던 사례를 들어 그 마음을 읽어주고, 어떻게 우리가 마음을 대하면 좋을지 쓴 책이다.
나와 똑같은 사례는 없지만, 책속 사례에서 내 마음을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던 기회가 됐다.
- 할 말을 못해서 나에게 화가 나는 경우
- 분노-자기 비난-무력감의 악순환, 그리고 타인에 대한 비난
- 페미니즘을 지지하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엔 아직 모자란 나의 태도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보고, 나를 괴롭히는 남들의 시선(가족 포함), 사회의 시선에서 나를 좀 놓아줄 필요가 있다고. 내가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하고,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경계와 기준을 세우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 나를 지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그 감정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고민을 다룬다. 고민의 주체가 사회 초년생이라고 보이는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아마 20대가 읽는다면 자기 마음을 읽고 자기를 '잘 지키는' 기준을 더 일찍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경험을 다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 당시의 내 마음이 이랬던 거구나 하며 자신을 다시 한번 다독여 주는 기회도 될 수 있다.
-
책속에서 & 그리고 나의 이야기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다.
삶은 계속될 것이고,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에. (95p.)
버리는 데 힘들었던 회사를 버리니,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눈에 들어왔다. 번역. 삶은 계속될 것이고,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가족 사례보다 더 극단적인 형태의 가족을 경험한 사람이 많을 거예요.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다들 조금씩은 어릴 때의 상처가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나 다들 그런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리고 나보다 더 심각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거든요.(119p.)
누군가 상처 받았다고 할 때는, 있는 그대로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나를 믿고 말하는 상대방을 저런 말로 또 상처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관계에는 항상 내 몫의 거절 분량이 있는데요.
내가 상대에게 해야 할 거절 분량이 50퍼센트라면 적어도 30퍼센트 정도는 채워야 상대와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 상대가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자기 위주로 행동한다면 내가 필요한 만큼의 거절을 했는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거절 분량을 조금씩 늘려보세요.
'ㅇㅇ총량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또라이 총량의 법칙' 무리에 항상 또라이가 있다. 또라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당신이 또라이다.
'지랄 총량의 법칙' 사춘기를 곱게 넘어간 사람도 언젠가 방황하고 폭발할 순간이 있다.
뭐 이런 식의 총량의 법칙이었던 것 같다. 거절에도 총량이 있다니, 흥미로운 구절!
이미 지나가버린 상황에 만족할 만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자책만 하는 것보다는 다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가는 게 훨씬 낫죠. (185p)
다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상황이 떠오를 때, 부디 이 말이 기억나기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가는 것, 내 인생의 기준을 세우는 것!
코르셋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코르셋이 진심 어린 염려와 함께 다가온다는 거죠.
(...) "여자애가 얼굴 다치면 시집 못 간다." "너는 조금만 꾸미면 예쁠 텐데." (203p.)
세상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있는데, 현실을 외면하거나 어떤 상황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 동시에 페미니즘은 본인에게 약점도, 위험한 것도, 허락받아야 할 무언가도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타인을 일시적으로 불편하게 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해롭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페미니즘, 작년에 우연히 페미니스트가 쓴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호기심이 동해 페미니즘에 대한 도서를 몇 권 더 읽었다. 뉴스에서 봤을 때는 페미니스트도 한쪽으로 치우친 사람인 거 아닐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고 나서 원래 그런 사회가 아닌 '기울어진 운동장'을 깨달았고,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다만 다수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소수도 잘 사는 사회가 진짜 잘 사는 사회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였다. 너무 당연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요즘은 공격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반감이 있는 분들은 페미니즘 책을 딱 한 권만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 속에는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을 알아가는 단계라서 나도 책 속의 사례처럼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은 아직 잘 못하겠다. 하지만 "10장. 꾸밀 때 눈치가 보여요"(페미니즘을 지지하는데, 네일을 받는 게 부끄러운 감정), "11장. 남자친구가 저를 질투해요"(페미니즘을 지지해주는 남자친구, 하지만 경제력이 높아진 여자친구를 대하는 남자친구의 행동 변화) "12장. 친구 같은 아빠에게 자꾸 불만이 생겨요"(N번방 시위에 나가는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이 챕터를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배워가야 할지 개념이 생겼다.
내 마음이 궁금한, 이상한 건가 고민하는 20대, 30대 여성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
제목과 책 소개를 보고 읽고 싶어서 서평단으로 신청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글입니다.
'마음이 듬뿍: 책 그리고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책_별을 선물받고 싶은 밤 <별을 선물할게> (0) | 2021.06.03 |
---|---|
그림책_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귀를 기울이면> (0) | 2021.06.01 |
그림책_아이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해야지! <바람이 멈출 때> (1) | 2021.05.21 |
어린이책_어린이 마음 엿보기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0) | 2021.05.20 |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창작과비평> 2021 봄호 (0) | 2021.05.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