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1 봄호에 실린 정이현 작가의 단편소설 <선의 감정>을 읽었다.
화자는 규모가 큰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여자 주인공이다. 회사에서 집에서 환자와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겪은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을 따라간다. 주인공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발전시키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현실적으로 공감가던 에피소드 세가지.
#1. 회사. 공공성과 수익성
재단 이사장이 바뀐 뒤 교수진 급여 인센티브제가 도입됐다. 수술과 외래 수, 입원 환자 회전율 등을 평가하여 의사를 7등급으로 나누어 급여가 지급된다.
주인공은 병원이 수익성만 생각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파고들려 하지는 않는다. 개편된 제도에 대해서도 깊게 알려하지 않지만, 등급이 내려가는 건 신경이 쓰인다. 교수별 입원환자 수, 내시경 시술 횟수를 보니 증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것도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다.
예년에 비해 어쩐지 다른 교수들의 입원환자 숫자가 늘어나고 내시경 시술 횟수가 증가한 것도 같았다. 모두 내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최소한 3등급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월급이 줄어들어서만은 아니었다. 절반 이하의 의사라는 자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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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회사는 공공기관이다. 성과급제는 일찍이 도입했고, 휴직 전에는 직무급으로 떠들썩했다. 업무에 따라 급여가 달라져야 한다는 제도.
전체 팀장이 비밀리에(비밀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에서처럼 기관 내 소문은 정말 빠르다.) 각 팀에 대해 중요성을 평가했고 그에 따라 팀별 순위가 매겨졌다. 해당 업무를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다른 팀의 중요성을 평가해서 나온 순위에서 당시 내가 속한 팀은 45개 팀 중 44위를 차지했다.
예산 규모가 큰 팀, 돈을 다루는 팀은 중요하고 예산규모가 작거나 복지성 사업은 중요하지 않은 사업으로 분류된 것 같았다. '모두 내 기분 탓인지도 몰랐다.'
그때 아마 일종의 분노와 상실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44위 업무인 것을. 공공성을 앞세우는 공공기관에서 예산의 규모가 크든 작든 공공의 필요, 이익을 위해 사업을 집행한다. 44위 업무라고 안 해도 되는 업무가 아니다. 44위 업무라고 허투루 해서도 안 된다.
직원 사기를 북돋아 성과를 높여도 부족할 판에 이렇게 자괴감을 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지 정말 의문이다. 병원을 비롯한 공공성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기관에 평가항목을 금액의 중요성, 수익성의 잣대로만 가져간다면 그 목적을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처럼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시행되는 제도에 맞춰 살아간다. 바람직하지 않은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는 활동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2. 코로나 시대, 돌봄
주인공은 의사 부부다. 근처 사는 친정 엄마가 아이를 전담한다. 불안해서 다른 시터도 못들이게 하지만, 엄마의 생활을 잃어버려서 그런지 우울해지고 말수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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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 집안일, 육아 중 제일 쉬운 것을 꼽으라면 나는 회사 일을 꼽겠다. 가장 힘든 것은 육아. 남들이 다 예민하다고 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육아는 감정 노동이 수반된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고, 노력해도 안 돼서 한바탕 큰 소리를 내고 난 뒤에는 하릴없이 무너진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 안나는 정말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이다. 하지만 안 하면 정말 티가 많이 나는 일. 집안일과 육아는 또 돌봄 노동으로 묶인다.
결혼하기 전까지 이 어려운 돌봄노동은 엄마가 다 했다. 그래서 그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알지 못했다. 항상 엄마가 차려 준 아침밥을 먹고, 엄마가 빨래한 옷을 입고, 엄마 아빠가 청소해준 깨끗한 화장실을 썼다. 내가 결혼했다고 엄마는 1인분만큼의 돌봄 노동에서 해방됐을까. 내가 아이를 낳고 복직하면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원하고 우리가 올 때까지 또 4-5시간을 아이를 봐주었다.
코로나 시대, 어린이집에 갈 수 없는 가정보육 기간. 다행히 내가 쉬는 기간이지만, 중간중간 번역일이 바빠지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고 운동할 시간을 잃었다. 돌봄 노동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코로나가 안 끝나서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는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 거부에는 대안이 없다.
#3. 선함과 나쁨. 유의미한 차이
주인공은 병원 내 블랙리스트에 오른 환자의 담낭을 치료하고, 이상이 없다고 퇴원시켰다. 일주일 뒤, 응급실에 온 그 환자는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담낭 문제는 아니었으나, 퇴원 전 진행한 심전도 차트를 다시 뒤져보고 당혹스러워한다.
안복희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 두 장을 거듭 살펴보았다. 첫 번째 심전도와 두 번째 심전도 사이에 존재하는, 1밀리미터가 넘고 2밀리미터가 안 되는 차이. 그것은 유의미한가 유의미하지 않은가. 그것은 나의 책임인가 나의 책임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위험한가 아니면 위험하지 않은가. 진실을 판독해줄 유일한 근거는 오직 심전도 그래프 속 얄따란 선뿐이라는 듯이 나는 정신없이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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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의 감정>, '착하다'라는 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어디까지가 착하고 어디서부터 나쁜 건가. 그 경계를 구분하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병원이 수익성을 우선하는 행태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의사로서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퇴원한 환자의 죽음에 당혹스러워하며 놓친 것은 없는지 복기하는 주인공은 선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주인공을 보면 말하지 않는 것도 나쁜 마음일 거다. 환자의 보호자가 '입원환자 회전율'을 떠올린 의사의 마음을 본다면, 또 사실 입원하고 퇴원할 때 찍은 심전도 그래프가 특이한 변화는 아니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를 보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에 따라 '선함'에 대한 기준은 다를 것이다.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삶의 태도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육아와 회사만이 전부였던 생활은 나에게 주인공처럼 무언가 '깊게 알고 싶어 하지 않고, 생각을 발전시키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서, 엄마, 아내, 딸, 회사원 말고, 그냥 내 안에 집중해서 정체성을 다시 찾고 싶다. 현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관심사인 페미니즘과 환경을 보다 깊게 파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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