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청소년 소설을 집어 들었다.
<귤의 맛>
조남주 장편소설
문학동네
중학교 3학년, 열여섯 여자 친구 네 명의 이야기.
아픈 동생이 있어서 엄마의 관심이 그리운 (공부 잘하는) 다윤,
가부장적인 아빠의 사업 실패,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던 주택으로 이사 간 해인,
전적으로 믿어주는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사는 은지,
평범한 4인 가족, 평범한 성적에 외모, 하지만 어딘가 겉도는 듯한 소란.
과거의 친구 관계, 가정사 등 각기 다른 경험과 사연을 갖고서
제일 인기 없는 영화부에서 만난 네 친구의 관계를 묘사한다.
각각의 미묘한 심리묘사에
스릴러물도 아닌데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읽었다.
친구가 전부였던 것 같은 그 열여섯 시기에
주인공이 친구를 잃을까봐, 혼자가 될까 봐, 외로울까 봐, 불안불안해하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이들은 부모님을 한 달을 졸라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은지 엄마가 동반한다는 전제가 처음부터 붙었지만, 그래도 한 달을 졸라야 떠날 수 있는 여행이다.
아이들에게 선택이란 이토록 제한적이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마음은 오롯이 자기 몫이다.
제주도 여행에서 은지의 제안으로 어쩌면 즉흥적인 약속을 한다.
다 같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인기 없는 동네의 고등학교라면 다 같이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비장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미심쩍고 느슨한 약속이다.
공부 잘 하는 다윤이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외고 원서를 쓰고,
사업 실패한 아빠의 이상한 책임감으로 해인이를 위장전입까지 시키며 자사고에 원서를 낸다.
하지만 미스테리한 사건들로 다윤은 외고 면접을 못 보고,
해인은 위장전입이 들켜 자사고 진학이 무산된다.
'선택'할 수 없던 일들이 가득하던 아이들은
동아리로 영화부를 선택했고,
영화부에서 만난 친구들과 진학할 고등학교를 선택한다.
미스테리한 사건들의 전말이 밝혀지며
아이들의 선택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든다.
쾌감이 있다.
-
책속에서
93p. '해인의 이야기' 중
"그래서 그럴 수도 있다는 거야? 넌 네 인생 망친 애가 원망스럽지도 않니?"
해인은 아빠를 빤히 보다 말했다.
"제 인생 망치지 않았어요. 망쳐지지 않았어요. 아빠."
120p. '은지의 이야기' 중
그때 은지는 처음으로 잘못하지 않아도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선택하지 않을 일에
영향을 받고 책임을 지고 때로는 해결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도.
137p. '우리가 가까워지는 동안' 중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 없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별일 없는 하루가 끝나도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 감정 사이를 넘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소란은 그때 자신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145p. '우리가 가까워지는 동안' 중
의례적으로 대꾸했지만 소란은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은지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대고,
두 눈을 맞추고, 자신에게만, 작은 목소리로,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좋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소란은 친구들이 성실하게 빚어 놓은 감정의 덩어리 안으로
단단한 껍질을 뚫고 쑤욱 들어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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