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상반기 신입 모둠 책 모임이
어느새 2번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의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노란 표지에 당당하게 서 있는 삐삐는
빨간 머리를 양갈래로 따서 묶고,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을 짝짝이로 신고,
누가 봐도 큰 신발을 신고서
자기 덩치보다 큰 말 한 마리를 번쩍 들어 올리며
당당하게 옆을 쳐다보고 있다.
오히려 들어 올려진 말의 표정이 놀란듯하다.
엄마는 어릴 때 돌아가시고,
아빠는 배를 타는 선장이었는데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바람에 날려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엄마는 하늘나라의 천사고, 아빠는 식인종 섬에 도착해서 황금 왕관을 쓰고 왕으로 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뒤죽박죽 별장에 혼자 사는 삐삐의 옆집에는 토미와 아니카가 산다. 토미와 아니카는 학교에 다니고, 집에서도 규칙을 따르는 삐삐와 다른 환경의 아이들로, 삐삐와 어울리며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려 주는 삐삐의 매력에 빠진다.
삐삐는 독립적이며 긍정적이다.
어른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동등한 위치에서 얘기한다.
(물론 어른들은 동등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므로,
삐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지만)
삐삐는 아빠와 항해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에
상상을 덧붙여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야기꾼이다.
(어른들은 거짓말이라 지적하지만,
삐삐에게는 하나의 놀이처럼 보인다.)
힘도 어른들보다 세고, 아빠가 남겨 준 금화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뒤죽박죽 별장에 어린아이가
혼자 산다고 해도 큰 걱정은 안 된다.
하지만 가끔 자신에게 또는 친구들,
어른들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에
한번 슬픈 표정을 지으면 한없이 슬퍼 보이는
삐삐의 표정에 괜스레 외로운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타고난 기질과 아빠와의 모험이라는 경험을
든든한 자산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삐삐지만,
그래도 엄마를 하늘의 천사로, 아빠를 식인종의 왕으로
믿는 삐삐가 어찌 부모가 그립지 않고, 외로운 순간이 없을까.
-
삐삐의 행동을 보며 읽는 내내 깔깔대며 웃었다.
어른들은 삐삐의 말을 거짓말이라 하지만,
아이들은 삐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들의 마음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 보인다.
학교에서 4 더하기 8은 왜 배워야 하는지,
포르투갈의 수도는 왜 알아야 하는지 우리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과 질서에 순응하길 바란다.
하지만 삐삐는 이에 순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명확하게 알고 말할 수 있다.
오늘 모임에서
'아이에게 학교가 필요한 곳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책이 1944년에 나왔지만,
지금의 학교는 여전히 다 다른 아이들에게 똑같은 틀을 씌워 그 안에서 생각하고, 배우게 한다. 그 틀 밖으로 나간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버려진다는 실제 초등학생 학부형들의 경험담이 쏟아져 나온다.
어른들이 만든 틀이 '공부'라는 아주 좁은 영역으로 설정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는 물론 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틀이, 규칙이 '공부'라는 하나의 잣대일 필요는 없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틀이라면, 어른들이 만든 그 틀을 넓혀 다양한 기질과 장점을 가진 아이들을 그 틀 안에 끌어들이려는 선생님,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삐삐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아,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멋져!
난 이 말이 삐삐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살아 있다. 삐삐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모든 순간을 주체적으로 산다.
누가 시키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는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삐삐다.
다른 책도 얼른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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