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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듬뿍: 책 그리고 영화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 / <창작과비평> 2021 봄호 문학 평론

by 소소듬뿍 2021. 5. 7.

 

육아 휴직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본사 지방 이전 이후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많아졌다.

10년 동안 몸 담았던 곳은 공공기관, 고용이 안정적이고 급여도 적지 않아서 나도 만족스럽게 다녔고 부모님도 내심 좋아했던 곳이다.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아이와 함께 같이 내려갈 수도 있다는 제안을 하실 정도로.

 

그 안정적인 우물 안에서 내가 하는 노동 외에는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개인주의의 전형.

뉴스에서 비정규직, 하청에 재하청 문제, 노사갈등이 불거져도 단순히 문제구나라고 생각할 뿐 나와는 너무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리고 보는 순간만 안타까워했을 거다.

 

그렇게 일 년 넘게 휴직을 하면서 나는 회사 밖의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돈을 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회적 가치에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나의 밥벌이, 노동에 대해 아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창작과비평> 2021 봄호 문학평론에 실린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는 나에게 아주 의미가 있었다.


 

우선 이 글의 필자인 문학평론가 한영인(이하 필자)씨는 노동에 대한 신화적 해석으로 시작한다. 

 

1. 성경

  (원인) 최초의 인간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서 

  (결과) 격노한 신이 '선악과 무단취식 사건'을 인간의 원죄로 규정하고 살아서는 벗어날 가망이 없는 노동의 수고를 인간에게 부과

 

2. 수메르 신화

  (원인) 지상에 내려와 문명을 건설하던 신들이 과도한 노동과 형편없는 처우에 불만을 품고 항의함

  (결과) 신들의 신인 엔키(EnKi)는 대리 노동을 할 인간을 창조해 신들을 고된 노역에서 해방시켜줌(필자는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노동쟁의'를 '훈훈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표현했다.)

 

 

노동과 신성이 대립관계에 있다가, '프로테스탄티즘 정신과 자본주의의 윤리'의 결합으로 노동은 신성의 결여가 아니라 반대로 신의 은총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징표로 여겨지게 됐다고 한다. 세속적인 직업을 갖고 노동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신의 영광을 증대시키는 거룩한 소명으로 인식하는 정신의 변혁이 자본주의의 발흥을 이끌었다는 막스 베버의 논의.

 

근대에 들어서는 노동자 계급이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해방의 드라마가 또 하나의 신화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오래인 지금, 노동은 위태롭고 곤궁하다며 '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시장으로 발길을 볼리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오늘날 노동의 곤궁함이 더욱 도드라졌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릿적의 숙명론이 다시 힘을 얻는 현실은 노동에 관한 새로운 자기증명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노동이 고통과 징벌일뿐이라는 신화적 숙명론익숙한 '노동혐오'를 반복하게 할 뿐이며 미래의 노동을 구성하기 위한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생성해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후 장강명의 <공장 밖에서> 김혜진의 <9번의 일>, 김세희의 <프리랜서의 자부심>이란 소설 평론으로 이어진다.

인상 깊은 구절만 밑줄 치기.

 

   '공정'한 재현에의 욕망과 능력주의의 덫: 장강명의 <공장 밖에서>

- 쌍용차 사태를 모티프로 하지만, 노사 간 계급적 대립이 아니라 이 사태에 연루된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을 통해 '공정하게' 재구성하려고 했다고 한다.

 

@Pixabay / L. Pham

(군산 GM자동차 공장 폐쇄로 실직한 노동자, 호주 애들레이드의 GM 및 그 하청업체 실직 노동자, 스웨덴 말뫼의 조선업 쇠락으로 1980년대 말 실직을 경험한 노동자를 심층 인터뷰한 황세원의 말 -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산지니 2020, 162면 참고)

경쟁력 상실이라는 사태의 원인은 동일하지만 사회적 갈등의 양상과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은 나라마다 모두 달랐다는 것이다. 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법칙이 아니며 이후 사태의 전개는 각기 다른 사회적 제도와 힘의 배치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차이는 소설 외적인 것이 아니며, 장강명이 추구하는 '한국 현실에 대한 성공적인 재현'을 위해서라도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특수성과 그 경로의존성이 만들어낸 사회의 구조가 더 깊고 폭넓게 서사 안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말한다.

 

장강명은 평평한 세계 위에서 갈등을 빚는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을 수평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서사의 '공정'을 꾀하려 하지만 그 갈등을 함께 풀어갈 '사회'라는 무대는 존재하지 않기 결국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의 논리 앞에 무기력하다. 사회적으로 첨예한 주제들을 다루는 그의 소설에 정작 '사회적인 것'의 영역이 매우 협소하다는 건 흥미로운 역설이다.

 

이처럼 필자는 작가가 '공정'을 꾀하며 노동자 한쪽 편이 아닌 다른 구성원의 목소리를 담으려 했다지만, 사회에 대한 '의도적인 눈감기'로 평하면서 글은 끝난다. 

 

'의도적인 눈감기' 언론의 시각이 이렇고, 이런 사태 밖의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 뜨끔했다.

 

 

   원한감정화하는 노동: 김혜진의 <9번의 일>

- 대기업 통신사에 26년간 재직한 직원에게 명예퇴직 권유가 사건인 소설

 

뒤쪽 내용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인상 깊은 구절만 남겨본다.

 

회사에 소속되어 열심히 일하면 노후에 안온한 중산층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는 낙관과 믿음은 특정한 시대/세대의 소산이라기보다 특정한 일자리의, 정확히 말하면 노동시장의 내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내부자였던 나의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이제 보장받을 수 있는 게 없으니 개척할 일만 남았다. 경제적인 선택이 아니고, 맨땅에 헤딩하는 고달픔이 눈에 선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을 느낀 이상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 노력을 보상받을 시간을 감내해야 하며, 그 시간을 버텨줄 희망이 필요한 시점.

 

 

   '프리랜서의 자부심'은 가능한가: 김세희의 <프리랜서의 자부심>

- '비정규노동'인 프리랜서의 삶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

- 이 소설이 독특한 이유는 '불안정/비정규' 노동을 다루는 이야기에 으레 따라붙을 법한 불안, 궁핍, 열패감, 자조, 원한감정 같은 것들 없이 자신의 일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담백하게 바라보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

 

@Pixabay / TaniaRose

안정성에 대한 선망이 강해지는 동시에 규범적인 고용 형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획을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라 취업난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쯤으로 치부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노동과 삶에 대한 새로운 욕망을 포착하는 데 있어 그 같은 고정관념이 지니는 한계 역시 만만치 않다.
1차 노동시장에의 진입을 시도하지 않거나 거기서 빠져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말하자면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세간의 편견은 여전히 강력하다.

 

'고용안정성이 보장된 대기업 정규직'을 고용 형태의 규범으로 보는 시각, 우물 안에 있던 나의 시각. 회사 밖을 나오니 반성할 일 투성이다.

 

프리랜서가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거니와 프리랜서의 삶을 주요하게 조명하는 작품조차 은연중에 그와 같은 관념을 전제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건 프리랜서가 업무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부조리와 악습이 큰데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프리랜서들의 어려움에서 드러나듯 경제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지속해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프리랜서의 자부심'과 결합되지 못할 경우 프리랜서는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랜서의 자부심''능력주의'가 횡행하는 오늘날 현실에서 무엇보다 요구되는 자기 통치의 덕목일 수 있다.

 

<프리랜서의 자부심>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주체적으로 다른 삶의 형태를 선택한 민용이라는 인물에 호감이 간다. 이 인물 소개한 줄에 동질감이 느껴진다. '가치지향적' 인물. 

 

(상략) 큰 회사에서 나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고 불안정한 수입에 허덕일지라도 자신이 선택한 일과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의 근거에 가깝다.

 

사실 최근 번역 에이전시와 작업한 첫 책의 번역료를 정산받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출판계와 관련된 일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시작한 일이다. 게다가 에이전시가 중간에 있으니 그 돈은 더 형편없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정산받은 돈은 형편없다는 표현도 부족했다. 처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책을 안 읽는 문화,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가 언급되지만, 새내기 번역가인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만 같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 안된다는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주인공이 느끼는 '프리랜서의 자부심'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안정적으로 물을 마실 수 있던 우물에서 벗어나서 이제 겨우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찾았지만, 길을 잃을까 봐 아직 두렵고,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릴 때에는 마구 흔들린다. 

 

김세희 작가의 <프리랜서의 자부심>은 아직 책으로 출간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창작과비평>을 구독해야 2020년 겨울호에 실린 소설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궁금해! 기억했다가 출간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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