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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듬뿍: 번역가/번역 일지

샘플 번역 탈락을 대하는 자세

by 소소듬뿍 2021. 3. 4.


첫 번역 수주 이후
살짝은 들떠 있었는데,
허허허...
그 후 샘플 번역을 줄줄이 탈락했다.

2020년 11월,
참여했던 샘플 번역 도서의 역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 에이전시 사무실에
첫 계약을 하러 방문했었다.

그때 에이전시 담당자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샘플 다섯 개 정도 했나요? 어땠어요?
선정된 사람이 더 잘했네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더 잘했는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것도 있죠?
출판사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사실 그랬다.
어떤 샘플의 경우,
선정된 역자의 번역본과 비교하는데
내가 고민했던 단어들을 그 역자는 다 생략해버렸다.

‘이게 뭐지...?’

단어를 마음대로 누락시키면 안된다.
하지만, 내가 고민한 단어도
출판사에서 그다지 마음에 드는 단어는 아니었나보다.
누락한 문장이 가독성이 더 좋았으니까.
그 때문에 나도 머리 싸매고 고민한 건데.

그래도 하나의 깨달음이랄까.
우리말로 번역된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
무조건 가독성이 좋아야 한다.
의미의 누락 없이 이 부분을 우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 샘플 번역에 선정된 역자의 번역본은
내 부족한 실력을 가감없이 드러내주었다.

이런 표현, 이런 구조로도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듯 단어 하나에 뜻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표현을 쓸 수 있는 말랑말랑한 머리.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직업이구나 생각했다.

-

하지만 그래도 탈락이라는 말에 익숙해질 사람은 없다.
첫 원고 송부 이후 줄줄이 4개를 떨어지니
자신감, 자존감도 같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완전 진로를 바꿔서 번역가가 되겠다는
결심 자체가 허무맹랑한 건 아니었을까.

다시 스멀스멀,
번역가로 자리 잡는 것보다
이직하는 게 빠른 건 아닐까
굳게 결심한 마음이 흔들렸다.

또 다시 혼자 속상한 마음에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축하해 주자!”

선정된 역자를 축하해 주자.
동료이자 경쟁자인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자.
그러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렇게
축하받을 일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처음 선정됐을 때도 누군가는 떨어졌을 거다.
그 분들도 탈락 소식에 속상하고,
나처럼 자괴감마저 들었을 수도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동료로 여기기로 했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상사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같이 울분을 토할 옆자리 동료가 있었고,
메신저로 이 상황을 함께 공유할 동기가 있었다.

번역가란 직업은 옆 자리 동료가 없는 프리랜서다 보니
얘기하고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는 게
너무 아쉽고, 때로는 외로웠다.

그래서
그들의 성공에 박수를 쳐주고,
축하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이런 건가.
마음이 편해졌다.

떨어질 때마다
‘축하해요 ㅇㅇ 번역가님’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번역본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어떤 표현이 좋은지, 어떤 순서로 번역했는지.

그래서 나는 샘플 번역을
번역 공부를 하는 수단으로
내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샘플 번역 도서의 역자가 되면 제일 좋겠지만.
번역가가 되고자 하는 수많은 동료분들
우리 모두 파이팅해요 :)
으랏차차!

@pixabay



< 새내기 번역가가 샘플 번역을 대하는 태도 >
1. 샘플 번역에 떨어져도 선정된 역자를 축하해주자!
(다음엔 저도 더 잘 할게요!)

2. 선정된 역자의 번역본과 비교하며 공부하자!
- 선정된 역자는 가독성, 글맛이 나보다 낫다.
-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게
말랑말랑한, 유연하게 생각하자.
- 번역가는 제2의 창작자다.
(기술적인 번역가 말고 번역작가라 불리고 싶다.)

3.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말자.
- 탈락해도 포기하는 대신 더 공부하자. 50세 이전에 한영 번역도 할 수 있게 공부하자.
- 난 로망을 실현하는 사람이다.
(10년 전 입사 초기, 회계 업무도 하고 싶었지만, 40세 이전에 번역서 한 권 갖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로망으로 끝나지 않고 첫 발을 내딛은 지금, 마음 굳게 먹고 앞으로 나아가자. 또 흔들릴 테지만 또 다시 굳게 마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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