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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듬뿍: 일상, 마음 쓰기 : )/행복이의 말말말

영화 <소울>이 알려준 아이의 천사 시절

by 소소듬뿍 2022. 3. 27.


아이가 사진 한 장을 보며 묻는다.

“엄마 행복이는 어디에 있어?”
“행복이는 엄마 뱃속에 있지.”

임신 6-7개월쯤 남이섬에 놀러간 적이 있다.
지독했던 입덧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제 제법 나 임신했어요 하고 불뚝 내민 배를 손으로 드러내며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을 보고 아이는 자기가 어디에 있냐며 물었다.

“요기 엄마 뱃속에 있지.”

며칠 뒤에 아이는 거실장을 뒤지다가 우리의 연애시절과 결혼식 사진을 찾았다.

“엄마, 나는 어디에 있어? 엄마 뱃속에 있어?”

자기가 보이지 않으니 엄마 뱃속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나름의 추리력과 응용력에 감탄하며 말한다.

“이때 행복이는 아직 엄마 아빠한테 안 왔을 때야. 천사라서 하늘에서 놀고 있었을 걸.”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순간 떠오른 애니메이션이 있다.
픽사의 <소울>



영화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혼이 있고, 죽으면 그 영혼이 하늘나라로 간다.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재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남자 주인공은 꿈에 그리던 밴드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연주하는 날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는다.

하늘에는 세상으로 내려가기 전 꼬마 영혼들이 있다. 꼬마 영혼들의 마음에 불이 반짝 들어올 만한 관심사, 적성, 즉 영혼을 울리는 무언가를 찾으면 꼬마 영혼은 세상으로 내려갈 티켓을 받는다. 그런데 유독 몇 년째 영혼을 깨울 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해 멘토를 여럿 갈아치운, 세상에 재미있는 게 하나 없는 꼬마 영혼이 나온다.

삶의 열정으로 가득한 현실 남자의 죽은 영혼과 적성을 찾지 못해 다 재미가 없는 아직 삶을 경험하지 못한 꼬마 영혼이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자기가 없는 엄마 아빠의 연애 사진을 보고 자기는 어디 있냐는 아이의 말에 순간 이 영화가 생각이 났고, 무슨 답을 해줄까 찰나의 고민 끝에 천사라서 하늘에서 놀고 있었을 거라고 얘기했다.

“내가 천사라서 하늘에 있었어?”
“응응, 그럼. 천사라 하늘에서 살았지.
아직 엄마아빠한테 오기 전이어서
이 사진에는 없네. 행복이는 기억 안 나?”

능청스럽게 물으니 더 능청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 기억 나.
행복이가 하늘에서 망원경 들고 보다가
엄마가 재미있어 보여서 엄마한테 온 거야.”

그러더니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이 말을 한다.

“행복이가 하늘에서 다 보고 있었어.
행복이는 다 알고 있었지.”

그러면서 마지막은 항상 저렇게 끝난다.

“엄마가 재미있게 놀길래 엄마한테 왔어.”

고슴도치 엄마에게 이 말 좀 심쿵 포인트다.

궁금해서 또 물었다.
아빠는 뭐 하고 있었어??

“아빠는 불장난하고 있었어. ㅋㅋㅋㅋㅋㅋ
불장난 하면 안 되는데, 아빠 웃기지.”

아이와 이런 대화를 계속 하다 보니,
왠지 진짜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상상이 믿음이 되고 현실이 되는 것만 같다.

엄마가 재미있어 보여서 다행이다.
영혼에 불이 딱 켜진 순간
팔랑팔랑 티켓을 품에 안고
60억 인구 중에
우리 둘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

-

애니메이션이 상상한 세상을 믿는다는 게
비현실적이고 말도 안 되지만
웬지 그럴 것 같은 세상이 있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과 <소울>.
(포스터를 찾다 보니 같은 제작진이다. 그들의 상상은 있을 법 하고, 믿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며 나의 기억섬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궁금했고, 결혼을 준비하던 2015년 당시 아이를 낳으면 사랑이 넘치는 기억섬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본 <소울>은 영혼에 불이 반짝 켜져서 내게 온 아이의 기질과 적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나는 아이에게 삶이 힘들 때 살아갈 힘이 되어줄 기억의 섬을 탄탄하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
우리 아이는 어떤 것에 영혼의 불이 켜져서 왔을까? 앞으로 어떤 불이 켜질까 궁금하다.

오늘은 너의 영혼을 울릴 만한 경험을 했을까? 애니메이션처럼 불이 반짝 켜지는 게 보이지 않아서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행복씨 천사 시절. 하늘에서 들고 온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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