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말한다.
자기가 퇴근하고 한 시간 동안 내가 한숨을 6번 쉬었다고 한다. 얼마 안 있어 한번 더 세 준다.
“7번 쉬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날이었다.
-
대선 전날 아이는 예방접종 2대를 맞았다.
독감주사를 맞을 때 워낙 씩씩하게, 쿨하게
'따끔'했는데 괜찮았다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던 꼬마라 이번 예방접종도 씩씩하게 맞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가서
팔을 걷으려고, 아니 팔을 빼려고 소매를 잡아 당기자 마자 주먹으로 옷을 꽉 쥐고 팔을 펴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아이의 말은 무시당했고,
아이의 커지는 울음소리에 밖에서 간호사 1명이 더 달려왔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더 거세게 하기 싫다고 표현하는 아이라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나)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밖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오래 기다릴 수는 없대, 엄마가 열 세고 나면 옷 벗고 주사 맞자."
하지만 나의 말과 상관없이,
간호사들이 아이를 잡았고, 의사는 주사 놓을 준비를 했다.
아무도 나와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힘으로 버티고 악을 쓰며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가닿지 않은 걸까?
소아과 선생님들 눈에는 진료시간이 늦어지는 이유일 뿐이었을까.
아이에게 열을 셀 시간을 주었으면 아이가 순순히 팔을 빼고 맞았을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무수한 아이들을 봐 온 의사, 간호사 눈에는 그 결과가 빤해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허공에 대고 말하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벽에 대고 말한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을 그렇게 사실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대기실에 나와 아이의 눈을 마주보며 말을 하는데,
아이 눈가에 실핏줄이 터졌다.
시뻘겋게 실핏줄이 터진 아이 얼굴을 보고 일부러 크게 말했다.
"어떻게 실핏줄이 터지니."
그제서야 간호사들에게 내 말이 들린다.
"아이고, 실핏줄이 터졌어요? 아이고 미안해라. 좀 지나면 가라앉을 거예요."
말뿐인 미안하다는 말은 나에게도 와닿지 않았다.
병원에 한번 쏘아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고, 또 참고
병원을 나섰다.
열만 기다려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뭐 그리 오래 걸린다고
소아과에서도 아이 말을 듣지 않고 이렇게
막 다루면 어떡하냐고
따지고 싶은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지만
한번 말이 나가면 감정이 치고 오를 것 같았고
아이 앞에서 병원 선생님들과 큰소리 내고 싶지도 않았다.
-
자기 전 옷을 갈아입는데
눈가에 실핏줄도 모자라
팔뚝과 등, 잡히고 눌렸던 부위에 또 실핏줄이 터져 있다.
아까 못한 말이 또 생각이 난다.
나와 아이만 얘기하는 듯한,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아니 들리지 않는 듯한 그 순간이 아주 짧지만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었다. 순간 무서웠던 것 같다.
-
다음 날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일어나 치른 대선,
그 결과도 마음에 돌 하나 얹은 것마냥 무겁다.
예방접종 한대 맞는 이 짧은 순간
의사에게조차 나와 아이의 말이 가닿지 않았는데,
더 큰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는 말이 얼마나 더 많을까 생각한다.
대통령이 뭐냐는 아이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모두가 잘 살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부디 듣고 싶은 소리만 듣지 말고,
힘 없는 약자의 소리도 들을 수 있기를.
여성과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이기를
의사에게는 환자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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