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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듬뿍: 번역가/번역 일지

샘플 번역, 백수와 프리랜서 사이 그 어디쯤

by 소소듬뿍 2021. 3. 1.

   샘플 번역 1. 후속 도서 역자 선정? 좋다 말았네.

저번 도서 번역 마감 주간에

에이전시에서 후속 도서 샘플을 보내주셨다.

'후속 도서'라는 단어는

샘플 테스트라는 관문을 남겨두고도

뭔가 벌써 내가 번역할 책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을 이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 기존 작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행복이가 빨리 등원했으면... 제발...)

그래서 아주아주 공손하게, 정말 죄송하다고,

지금 책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회신했었다.

1.15.(금) 마감일.

번역본을 보내자마자,

에이전시에서 한 주 기한을 미뤘다면서

동일한 도서를 보내주셨다.

"오!! 정말 감사합니다."

전 세계 무역 전쟁에 대한 책인듯했고,

경제 용어들만 체크하면 재미있게 읽을 책인 것 같았다.

그리고 번역도 나름 잘 풀렸다.

제출하고 그 다음날.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기에,

전화는 아주 긍정적인 메시지일 확률이 높았다!

"이번 도서 역자로 선정됐습니다!

이렇게 연달아 하게 돼서 잘 됐어요.

이럴 때 더 잘 해야 합니다!"

오예!

같이 기뻐해 주는 듯한

에이전시 담당자분의 목소리가 고마웠다.

전화를 끊은 즉시, 엄마와 오빠(신랑)에게 얘기했다.

엄마는 행복이를 낮에 좀 봐주겠다고 했고,

오빠는 실력이 늘었나 보다고, 샘플 보기만 하면 된다고 나를 띄워줬다.

어깨가 들썩들썩, 입꼬리가 씰룩씰룩.

20분 뒤, 메일함.

출판사에서 착오가 있었다며,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메일.

전화가 아닌 메일.

© rojekilian, 출처 Unsplash

 

아... 입이 방정이지,

좀만 참을 걸 ㅠㅠ

그렇게 또 방정맞게

난 또 착오가 있다고, 안 된 것 같다고

엄마와 오빠에게 전해야 했다.

(아... 그 뻘쭘함이란...)

결국 다른 역자가 선정됐다.

다른 역자분이 쓰신 번역본과 비교해볼 때

느끼는 바가 있다.

아, 이렇게 매끄럽게, 이런 표현, 이런 문체로도

번역할 수 있구나.

그래도 아쉬웠다.

경제용어는 내가 더 정확하게 쓴 것 같은데,

문체가 출판사 취향이 아니었나.

아무튼 이렇게 에이전시의 착오로

후속 도서 역자로 선정됐던 나는 20분 만에

다시 일감을 찾아야 하는 백수가 되었다.

(에이전시 담당자분이 내 프로필을 보내달라는

출판사 메일을 선정 메일로 보셨다는...

뭐 내가 되길 바라셔서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니,

엄마는 또 참 긍정적이라며 ㅋㅋㅋㅋ)

   샘플 번역 2. 다시 실력

1.22.(금) 저녁, 에이전시에서 샘플을 받았다.

음, 이번에도 경영 도서, 좋은 서비스 디자인에 관련된 책이었다.

지난 샘플과 달리, 술술 읽히지가 않더니만,

번역문도 술술 못 쓰겠다.

번역 수업을 들을 때,

'영어 구조가 보이지 않는 문장이 좋은 번역'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번역은 구조가 보인다.

잘 못했다는 의미다.

다시 써보고, 고쳐도 잘 안 읽힌다.

본문 사례에 나온 외국인 인명 표기도 눈에 거슬리고,

표현도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또다시 아직 부족한 실력을 깨닫는다.

샘플 마감 당일 저녁,

바로 결과를 받았다.

역시나 다른 역자가 선정되었고,

그분의 번역을 보며 내 문장과 비교할 수 있었다.

© brett_jordan, 출처 Unsplash

 

선정된 역자분의 글은 술술 읽혔다.

다시 실력의 문제다.

   백수냐, 프리랜서냐.

본사 지방 이전으로 의도치 않은 육아휴직,

휴직이 끝나도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서

갑작스러운 '백수' 생활을 나는 참으로 힘들어했다.

하고 싶었던 번역 공부하면서 좀 쉬라는 남편의 말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던 2020년이었다.

이렇게 나는 또다시 일이 없는 백수가 되었다.

잠깐, 백수가 뭐지?

국어사전을 다시 보자.

돈 한 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건달???

나는 돈 한 푼은 있고

(못 벌면 없는 건가?)

빈둥거리지는 않는다.

놀고먹지도 않으며

건달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백수가 아니다.

(정말 아닐까? 아닌 게 맞겠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가 나를 백수라고 생각할 때,

내 자존감은 떨어졌다.

10년 회사 생활의 부작용인가 보다.

온갖 감정이 폭발했던 2020년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백수 대신 '공부하는 프리랜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이 없는 기간에도 할 일은 많다.

문법책도 다시 보고, 영어 표현, 우리말 바로 쓰기,

원서 읽기, 번역 기획서 쓰기 등등.

나는 학창 시절부터 머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고

하는 만큼 결과를 얻었던 노력파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성과, 뿌듯함을 알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내 탓이라는 것도 안다.

샘플 번역, 잘 해서 되면 너무 좋겠지만,

그걸로 일희일비하지는 않기로 하자!

아직 회사 밖은 처음이라

신생아처럼 겨우 팔다리를 흔들고 있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회사 밖 정체성에

멘탈이 쉽게 흔들거린다.

뒤집고, 구르고, 잡고 일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공부하는 프리랜서 멘탈 강화! 실력을 키우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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